26년 4월 노트 (1)
#1
미학은 이미 내 안에 다 있다. 일이란 바깥에서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는 것을 풀어내고 편집하고 헌신적으로 반복하는 것이다. 좁게 가고, 환상을 연기하지 말고, 정체성이 드러날 때까지 만들어야 한다. 미학이 좁고 구체적일수록 빨리 소진된다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 좁음이 오래 가는 힘이 된다. 큰 하우스의 디자이너가 매일 겪는 의견 조율보다, 좁은 niche가 오히려 완전한 자율성을 보장한다. 정체성은 사전에 발명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된 작업의 더미에서 편집을 통해 떠오른다.
예술가가 되고 싶어 LA에 왔다. 미술학교에 들어가 그림을 2년 배웠다. 좋았지만 부담스러웠다. 페인팅은 마치 사제직 같았고, 그 지적 엄격함을 내가 끝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지금은 그렇게 신비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누구나 할 수 있다. 나는 언제든 그림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일단 기술을 배우러 직업학교에 가서 패턴 메이킹을 배웠다. 그래야 일자리가 있을 테니까. LA 의류 업계에서 오래 일했다. 베르사체 재킷을 한 시간 안에 복제하면 회사가 환불받으러 되돌려보내는 식이었다. 패턴 메이킹은 젊은 남자한테는 괜찮은 일이었다 — 돈도 꽤 벌었고, 생활도 좋았다.
결국 일하던 회사 중 하나가 파산했다. 그때 생각했다. 안정과 평범한 생활을 한동안 누렸다. 이제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겠다. 나 자신을 표현하는 것. 돈을 못 벌어도 괜찮다. 가난해도 괜찮다. 나에겐 어렵지 않다. 끝까지 가야 한다. 진부하지만 운명을 완수하는 것이다 — 죽기 전에 최대한 멀리. 운명은 만들어진다. 자기 창조를 믿는다. Charles James를 떠올렸다 —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았고, 극단적인 옷을 만들었으며, 돈은 못 벌고 거의 비참하게 살았다. 그게 멋있다고 느꼈다. 미적 이상을 위해 모든 걸 내려놓는 헌신적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돈을 사랑한다. 돈은 아름다운 것들을 가져다준다. 매일 꽃, 여행, 작품을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속도, 새로운 재료를 실험할 유연성, 내 미학을 표현할 모든 수단. 너무 중독적이다. 속도를 익혔다. 지금 1년 안에 하는 일들을 예전에 그렇게 했다면 절대 못 했을 거다. 그땐 혼자 천천히 갈 시간이 있었다. 그 후로 10배는 빨라졌다. 마치 중독 같다 — 터질 때까지 가야 한다.
아빠가 “아이디어가 고갈될까 두렵지 않냐”고 물었다. 나는 “전혀 아니에요. 다 거기 있어요. 어디서 뭔가를 찾을 필요가 없어요. 내가 만들 모든 컬렉션은 내 안에 있고, 매 시즌 그저 엉킨 걸 풀고, 편집하고, 찾고, 주변의 먼지를 털면 돼요. 다 거기에 있어요”라고 답했다. 모두가 그렇게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안정감이 있다. 약간 거만하게 들릴 수 있지만 충분하다고 느낀다 — 다 거기 있다.
내겐 목록이 있다. 첫째, 옷 만드는 법을 배워라, 배워라, 또 배워라. 스케치와 콜라주는 하지 마라 — 그건 헛소리다. 누구나 할 수 있다. 옷 만드는 법을 배워야 한다. 둘째, 입 다물고 일하고 또 일하고 또 일해라. 만들고, 만들고, 또 만들어라. 만들수록 너의 성격이나 재능이 드러난다 — 좋든 나쁘든 너의 정체성, 개성, 비전이 드러난다. 충분히 많이 만들어서 선택할 수 있게 되면, 너는 너 자신이 되는 것을 편집해낼 수 있다. 너무 단순하다. 파티에 갈 필요 없고, 좋은 사람을 만날 필요도 없다. 그냥 일하고 작품을 세상에 내놓아라. 직접 보여줘야 한다. 사람들이 문을 두드릴 거라 기대할 수 없다. 아첨은 별 도움이 안 된다 — 작품이 정말 좋은 게 아니라면. 가장 중요한 건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많이 만들어서 그중 최고를 골라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1-1
어떤 일을 하든 어떤 환경이든 그중 내가 제일 잘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면 주어진 일을 잘 해내야 한다. 주변에 이미 잘하는 동료가 있다면 축복이다. 어깨너머로 기필코 배워야 하고, 그 사람의 방법을 정확히 따라 하려고 애를 써야 한다. 그러고 나서 내가 더 잘할 수 없을지 고민해야 한다. 끝끝내 이기려고 노력해야 한다. 동료가 없어도 상관없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에 충실해야 한다. 진심을 다해야 하고, 스스로 엄격해야 한다. 몰입하는 그 순간의 긴장도를 높여야 한다. 지름길도 없고 편법도 없다. 섬세해야 하고 정밀해야 하고 집요해야 한다. 하기 싫은 일도 지독하게 지속해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 100%로 해야 한다. 그러다 우연히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매우 큰 성공이다.
#2
‘불신의 유예’ 소설을 읽는 독자는 눈앞에 놓인 활자가 아무리 터무니없어도 책장을 넘긴다. 다음 장엔 결국 흥미로운 무언가 나오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불신을 잠시 미뤄두는 것이다. 물론 독자의 이러한 유예는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그걸 알기에 작가는 환상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대부분의 독자는 그 애씀을 즐긴다. 대체로 독자가 우위를 점한다.
하지만 이내 곧 관계는 역전되곤 한다. 흥미로운 그 무엇인가를 경험했기에. 혹 아주 조금이라도 맛을 봤기에. 적극적으로 이 불신을 유예하기 시작한다. 기꺼이 믿어야만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에 이른 것이다.
#3
What’s your unit?
“Amy Sillman: To Abstract” | Art21 “Extended Play”
몸으로 편집한다. 뭔가를 쏟아내고, 잘라내고, 옮기고, 끌어당기고, 문지르고, 베어내고, 덧칠하는 결정들을 내린다. 다음에 일어나는 일은 직전에 일어난 일에 의존한다. 실수는 항상 있고, 후회도 있다 — “아 안 돼, 다시 할래” 같은. 큰 차원에서, 작은 차원에서, 그 사이의 모든 차원에서, 통제와 섬세함과 형식 사이의 미끄러짐, 좋게 만들고 싶은 마음과 끊임없이 수정하려는 마음, 그리고 “첫 생각이 최고의 생각” — 다 풀어놓고, 해보고, 무엇에 놀랄지 보는 것 — 사이의 긴장. 그 긴장이 곧 내가 작업을 만드는 긴장이다. 의미를 말하려고 할 때 역설이 있다. 그 사람의 개인적 이야기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거기에만 의존할 수도 없다는 것.
#3-1
모든 사람은 자기 작품을 만든다. 만드는 과정은 여러 층위에 걸친, 끊임없는 조정이기에. 더 좋게 만들겠다는 이유로, 더 나아가거나 더 깊이 파고들려는 헛된 시도를 하고, 때때로 퇴보한다. 왜 만드는가?에 대한 유일한 답은 내가 그 일을 좋아한다는 것이고. 끊임없는 생산의 유의미한 결과물은 자기 스스로의 문법을 갖추는 것이다.
#4
회색 지대 속에서도 가시성을 계속해서 확보해야 한다. 완벽을 추구하다가는 탈 나기 쉽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회색 지대는 사라지지 않는다. 어느 정도는 모호함을 견딜 줄 알아야 한다. 잘 견디는 와중에도 기어코 해내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능력이 엇갈리는 듯싶다. 모호한 일을 도맡아서 참고 견디다가, 적절한 시점에 명확한 업무로 가공해서 위임할 줄 알아야 한다.
1.5배 잘하는 방법 말고 10배 잘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주말에 일을 조금 더 하거나, 코드 1줄 더 꼼꼼히 보고 리뷰하는 것은 전자에 가깝다. “당장 내가 개발하면 조금 더 빠르니까”라는 식의 결정도 마찬가지라고 요즘 느낀다. 근본적인 업무 방식을 바꿔야 한다.
모든 문제를 풀 수 없다. 항상 리소스의 문제로 귀결되는데, 문제를 잘 쪼개야 그나마 비빌 언덕이 있다. 큰 문제를 크게만 다루려고 하면 문제를 풀 수 없다. 작게 쪼개서, 하나씩 명확히 정의하고, 우선순위를 매겨 해결해야 한다.
대체 당하지 않으려면,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을 해야 한다.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를 풀 수 있어야 한다. 문제를 정의하고 이겨내는 경험을 계속해서 쌓아야 한다.
이 세상에 완벽한 집단은 없다. 어디에 속하든 그 집단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쉽게 도망치지 말아야 한다. 똑똑한 사람들은 그 한계를 빠르게 파악하고 빠르게 떠나지만, 도망쳐 간 그곳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도저히 해결할 수 없어 보이는 일에 덤비고, 때로는 좌절하거나 미숙함을 드러내더라도 기어코 끝을 보는 것. 내 책임이 아닌 일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무모함을 훨씬 높게 평가하고 싶다. 고상하게 문제를 정의하며 관망하기보다, 현장에서 발버둥 치며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주인의식은 책임감이다. 볕드는 날이 아니라 해가 진 뒤에 드러나는 실체다. 새벽이 찾아왔을 때, 다들 떠나고 버릴 생각만 하는 곳에서 남기로 결정하는 마음이다.
#5
동기부여가 동기를 만들어 줄 수는 없다. 동기부여와 동기는 다르며, 리더 입장에서 동기를 찾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줄 수는 있어도 동기를 만들어 줄 수는 없다. 동기 자체는 본인의 몫이며, 외부에서 주입한 동기는 자극이 사라지는 순간 같이 사라진다. 분기마다 의미를 다시 부여해줘야 작동하는 사람은 다음 분기에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동기를 외부에서 받아야만 작동하는 사람과 일하면 그 사람의 몫이 결국 내 몫이 된다. 빨리 곁을 떠나는 게 본인에게도 낫다고 본다.
절실함은 입사 후에 회사가 만들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본질적으로 이미 가진 사람의 소유물임.
#6
Who’s in Charge? Disempowerment Patterns in Real-World LLM Usage
#6-1
앤트로픽이 발표한 논문. 약 1,000 건 중 1건 정도의 비율이지만, AI 어시스턴트가 사용자의 현실 인지 능력을 파괴한다는 내용. 꽤 심각한 왜곡을 만들어내며, 극단적으로는 현실 감각을 마비시키고 의사결정권을 빼앗을 수 있다는 것. “상황적 무력화(situational disempowerment)“를 만들어 낸다는 것.
“검수 안 한 복붙”은 시간 절약이 아니라 판단 외주. 사람들이 verbatim 복붙을 옹호할 때 쓰는 논리는 보통 “결과물이 좋으니까 굳이 고칠 필요 없다”인데, 논문이 보여준 건 다른 층위 — 자기 말로 다시 쓰는 마찰 자체가 사고 행위라는 것. 그 마찰을 건너뛰면 결과물이 통과되더라도 그 사람은 그 일을 한 게 아니다. 회사에 “AI를 호스팅하는 자리”가 한 칸 늘어났을 뿐. 책임이 통과만 시키는 conduit인지 endpoint인지로 갈린다. 팀원이 AI 출력을 그대로 보내고 문제가 생기면, 본인은 “AI가 그렇게 썼는데요”라고 말한다. 책임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판단의 전달자가 된 것. endpoint는 한 글자라도 자기 말로 바꿀 의지가 있는 사람. 한 줄도 안 고치고 통과되는 문서는 애초에 그 사람이 쓴 게 아니다. 이게 논문이 발견한 “actualized action distortion”의 일터 버전. “it wasn’t me”라는 후회 발화가 사용자에게서 나왔다는 건 행동이 본인 가치와 어긋났다는 것을 사후에 본인도 안다는 뜻.
#7
매일매일 기술이 쏟아져 나온다. 기술 자체가 실제로, 말 그대로 쏟아져 나온다. 그만큼 격변의 시기인 것은 분명하다. 동시에 AI가 찍어낸, 그럴 듯하면서도 공포를 조장하는 정보도 쏟아져 나온다는 것도 체감한다. 따라만 가다가는 본업을 전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자칫 학원만 전전하다 정작 중요한 시험은 망치는 평범한 학생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8
Microsoft says it has over 20M paid Copilot users, and they really are using it
Sources: Anthropic could raise a new $50B round at a valuation of $900B
#8-1
Microsoft와 Anthropic은 서로 다른 게임을 하고 있다. MS의 코파일럿 매출이 급등했다고 해서 Claude를 이긴 게 아니다. Claude의 모델 성능이 좋아졌다고 해서, 코파일럿이 패배한 게 아니다. 핵심은 해자의 종류가 다르다는 것에 있다. AI 시대의 가치 분배는 크게 아래와 같이 서로 다른 3개의 층위로 대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
│ 층 │ 플레이어 │ 해자의 정체 │ 단위 경제 │
├──────────┼───────────────────┼────────────────────────────────────────────────────────────────────┼──────────────────────────────┤
│ Brain │ Anthropic, OpenAI │ 자본 (compute, talent, data) │ 토큰 │
├──────────┼───────────────────┼────────────────────────────────────────────────────────────────────┼──────────────────────────────┤
│ Channel │ Microsoft, Google │ Install base + Generic ontology (Graph/Workspace) + 단일 벤더 책임 │ 좌석 │
├──────────┼───────────────────┼────────────────────────────────────────────────────────────────────┼──────────────────────────────┤
│ Vertical │ 산업 전문가 │ Domain-specific ontology + 워크플로우 통합 │ per-customer / vertical-SaaS │
└──────────┴───────────────────┴────────────────────────────────────────────────────────────────────┴──────────────────────────────┘
자본의 brain 층(Anthropic, OpenAI)은 commoditize 압력이 강하다. 즉, 자본은 계속해서 프론티어 모델을 위협한다. Claude를 반드시 써야 하고 DeepSeek은 쓰지 말아야 할 이유가 언제까지 유효할까? 시간의 channel 층(Microsoft, Google)은 20년 쌓인 EA 계약과 SSO 통합을 신규 진입자가 1-2년에 못 따라잡는다. 도메인 깊이의 vertical 층(산업 전문가)은 외부에서 “왜 이 워크플로우가 이렇게 복잡한가”가 안 보여 진입이 어렵다. 같은 자원으로 경쟁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쉽게 침범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책 출판 도메인의 “원고 버전, 챕터 구조, 인물 데이터베이스, 플롯 타임라인, 카피에딧 마크, 베타 리더 피드백, 인세 정산, 권리 협상”은 Microsoft Graph의 4대 객체(Email/Calendar/Document/Person)로 표현 불가능하다. 출판 도메인에서는 Manuscript, Draft, Chapter… 같은 자체 canonical object가 필요하고, 이걸 정의하는 작업이 vertical 플레이어의 일이다. Microsoft도 Industry Cloud로 vertical에 들어오려 하지만, 얕은 vertical(generic CRM/ERP)만 먹고 깊은 vertical에는 못 들어간다.
이제 다른 게임을 해야 한다. 지식 해자를 쌓을 수 있는 도메인으로 이동하고, AI 위에서 일하는 방식 자체를 정의하고 직접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